서울에서 한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강화도는 섬 같지 않은 섬이다. 멋진 바다 풍광과 더불어 내륙 못지않은 평야와 산을 품고 있다. 강화 땅 곳곳에는 선사시대부터 구한말까지 길고 풍부한 역사의 흔적들이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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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궁지 고려궁지는 760여년 전,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개성에 있던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옮겨와 임시궁궐을 짓고 항전하던 곳이다. 고려 조정이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머물렀으며 개경 환도 후 몽고의 요구로 궁궐과 성이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는 행궁과 강화 유수부가 들어섰으나 현재는 동헌인 명위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고 함께 있었던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때 불타 새로이 지었다.
* 강화곤충농원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수백 수만의 곤충을 만날 수 있고 일부 곤충은 성장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코스로 좋다. 유충과 성충을 구입해 가정에서 곤충의 한살이를 지켜볼 수도 있다.
*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한자로는 지석묘(支石墓)라 한다. 지석, 즉 굄돌 이 덮개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강화도에는 이러한 고인돌이 무려 120기에 달한다. 이 중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사적 제 137호)은 덮개돌 긴축의 길이가 7.10m로 무게는 무려 50톤에 달한다.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 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교산리 고인돌군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인해 민간인이 관람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것이 흠이다.
* 강화산성,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강화 해안도로에는 몽고침입과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강화산성과 더불어 진과 포, 돈대 등의 국방유적을 만날 수 있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광성보, 덕진진뿐 아니라 포탄 맞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초지진의 성벽과 소나무들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 전등사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가진 삼랑성 내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대웅전(보물 제 178호), 약사전(보물 제 179호) 등의 보물이 있으며 대웅전 네 귀퉁이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녀상(裸女像)이 있다.
* 석모도 민머루 해수욕장과 보문사가 유명하다.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 기도도량으로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창건하였다. 418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마애관음좌상에서 바라보는 시원스런 바다 경치는 강화 팔경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 지척인 민머루 해수욕장은 밀물 때 해수욕을 할 수 있고, 썰물 때 맨발로 갯벌을 걸으면서 자연 머드체험과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강화 남단의 갯벌은 아마존, 지중해, 일본해와 더불어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소중한 곳이며, 석모도는 영화 시월애 및 취화선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외포리는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보문사로 가는 선착장을 비롯해 광활한 들판, 정겨운 길의 운치를 맛볼 수 있다. 주변 농가들도 70~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푸근한 느낌을 준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은 남한에서 제일 규모가 큰 북방식 고인돌로 유명하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면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히는 보문사로 발길이 닿는다. 북한에 근접해 있는 창후리 선착장은 외포리 선착장과는 달리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아름다움만은 뒤지지 않는다. 포구 위는 조선 숙종 5년에 축조된 것으로 강화도 방어 진지 구실을 하던 무태돈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시대별로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강화도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유를 쉽고 재미 있게 알려 준다. 선사시대 고인돌을 어떻게 들어 올렸을까? 지금의 장비와 기술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듯하다.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고 알려진 참성단을 지나 보물 제 11-8호로 지정된 강화동종(江華銅鐘)을 만난다.
조선시대에 강화성문의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든 종이라 한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퇴각하면서 강화동종을 가지고 가다가 너무 무거워서 갑곳리 중로에다 내팽개치고 갔다고 하는 일화가 있을 만큼 육중한 무게의 종이다. 그 무게가 2.5톤가량 된다고 하니 종을 어떻게든 가져가려했던 프랑스 군들의 쩔쩔매는 모습이 그려진다.
[강화동종]
전시관을 천천히 돌면서 시대별, 상황별로의 여러 가지 모형들을 보고나면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가 더욱 쉽게 다가온다.
병인양요 때의 정족산성전투의 모습이다. 총포의 화력에서 절대약세였던 조선군이 강화도 수복을 위해 몰래 정족산성에 침투하여 프랑스군을 무찌른 장면을 보니 그때의 치열하고 비장했던 선조들의 모습이 느껴진다.
역사관 광장에는 금속활자 기념비를 비롯해서 67기에 달하는 비석이 서 있다. 삼충사적비, 불망비, 송덕비, 선정비등 내용과 모양이 다양하다.
강화도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비석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발걸음은 줄일 수 있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해 의미를 잃은 비석들이 쓸쓸하게도 느껴진다.
전시관 옆에 위치한 갑곶돈대에 들려 여유로운 경치를 바라 보며 강화도의 좋은 공기에 맘껏 취해 보는 것도 좋다. 갑곶돈대는 고려 때 강화해협을 방어하고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용도 만큼, 마음까지 뻥 뚫리듯이 시원한 경치를 자랑한다.
강화역사관에서 역사 유물은 비록 작고 사소한 것 일지라도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우리나라에게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진 부근리 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② 강화도고인돌 유적지
강화도 고인돌 유적지군은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강화도 고인돌]
이곳 유적지 안에는 선사시대의 움집을 재현해 놓아 그 시대의 주거 문화를 함께 볼 수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 들게 한다.
[강화도 고인돌]
역사관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고인돌을 실제로 보니 더 거대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수천 명의 무리를 거느린 족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니 왕의 무덤이라 할 수도 있겠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지를 나와 강화도의 유명한 먹을거리인 밴댕이회와 순무로 만든 김치의 알싸함을 느껴보며 해안가 펜션에 여장을 푼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라 여행객들을 위한 좋은 시설의 숙박시설이 많은 것이 강화도의 특징이다.
③ 2일째 - 마니산
이튿날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니산 등반을 위해 떠난다.
입구에서부터 초록의 향기와 이효석님의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말한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풍기는 광경이다.
등산로는 매표소를 지나 조금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한 곳은 참성단 계단로, 다른 한 곳은 참성단 단군로로 갈라지지만, 모두 참성단에서 만난다. 자연적인 흙길이 좋을듯하여 단군로로 오른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은 근처 바위의 모습과도 닮았다.
마니산은 가을 단풍의 화려함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수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섬에 있는 산의 특징인 탁 트인 넓은 경관을 자랑한다.
해발 468미터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날은 보수 공사 중이라 멀리서 유적지의 모습만 담아본다.
④ 초지진
그 간, 도시에서 쌓인 잡념을 땀으로 흘려 보내고 강화도를 벗어 나는 길목에 위치한 초지진을 둘러본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시대 효종 7년에 구축한 요새다. 그 후 고종 때 프랑스 함대, 미국 함대, 일본 군함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으로 그때의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한 것이라 한다.
교전 당시의 포탄 자국이 생채기로 남아있는 소나무가 그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입구에는 그때의 문지기를 대신하는 노란 단풍나무가 반겨주고 있다.
성안에 있는 대포는 ‘위력은 약하다’는 설명으로 우리선조들이 얼마나 힘겹게 버텼는지를 대신한다.
성곽의 포문으로 바라본 바다는 그때의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을 무색하게 할 만큼 고요하다.
지금은 주변의 낭만적인 풍경을 지키고 있는 장소로 남아 초지대교를 건너가는 여행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 삼별초의 항쟁지의 시초가 된 강화도. ★ 외세침략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서려있는 강화해협의 치열했던 격전지 탐방.
[중학교 교과서 국사 -186,193,194페이지]
[강화도 항몽 유적지 탐방 추천 코스 안내] 출발(하루소요,비용:1,700원) ① 광성보(약 1시간 소요) ↓(2km 차량5분이내 이동) ② 덕진진(약 1시간 소요) ↓(2km 차량5분이내 이동) ③ 초지진(약 1시간 소요) ↓(5km 차량10분이내 이동) ④ 전등사(약 2시간 소요)
※ 이용 안내 일괄입장권(강화역사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구입시 : 청소년 개인 1,700원, 단체 1,300원 이용시간 : 1,2,11,12월 09:00 ~ 17:00 / 3,4,9,10월 09:00 ~ 18:00 / 5,6,7,8월 09:00 ~ 19:00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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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안내
강화군시설관리공단 032-930-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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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때 광성보는 가장 격렬한 격전지였다. 당시 미군은 85문의 대포를 쏘아댔으나 조선군은 정조준조차 안 되는 대포와 소포가 전부였다. 어재연 장군은 불과 2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포탄이 떨어지자 칼과 창으로, 마지막엔 맨주먹으로 대항하여 싸웠다. 결국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들은 포로가 되느니 최후까지 나라를 위해 몸바치겠다는 결의로 격전, 전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가슴 뭉클하다. 얼마전, 어재연 장군이 미군에게 빼았긴 '수(帥)'자 깃발이 138년만에 귀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덕진진.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포수들이 김포에서 덕진진으로 건너, 전등사로 들어가서 진을 치고 프랑스군을 격퇴한 일화가 있다.
남장포대. 남장포대에는 바다를 향해 15문의 포대가 줄지어 있다. 어떤 적군이라도 쳐들어오면 바로 포탄을 발사할 태세다. 지금은 적막한 평화로움이 흐르고 있지만 바다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그 당시 군사들의 함성을 실어 오는 듯 하다.
덕진진에는 대원군의 명으로 세워진 경고비가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비문의 뒷모습에서 적군을 감시하는 초병의 늠름한 어깨가 연상된다. 이 비문에는 '해문방수타국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라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어떠한 외국 선박도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당시의 쇄국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초지진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일본군함 운요함 침공이다. 1875년 8월 21일, 일본군함 운요호는 초지진 포대 앞까지 접근했다. 이에 초지진은 포격을 가했다.그러나 포의 성능이나 포술이 훨씬 뛰어난 운요호의 대응 맹포격에 초지진은 무릎을 꿇고만다. 결국은 이를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고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됨으로서 우리나라의 주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수모의 역사가 시작 되었던 초지진. 그러나 현재는 저 멀리 초지대교가 강화해협을 지키는 듯 우뚝 서 있다.
전등사에 들어서려면 성문을 지나야 한다. 성문을 지나는 순간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전등사로 향하는 산길은 천천히 음미하며 가기 딱 좋다. 그 길을 따라 고찰로 오르는 시간이 멘토와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전등사. 이름만 들어도 신화속의 오래된 사찰처럼 느껴진다. 수행을 떠나는 수도자의 멀고도 먼 여행지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전등사는 강화도에서 1600년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해온 고찰이다. 고려시대에는 대몽항쟁의 근본도량이었으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파란한 역사와 함께 해 온 전등사, 그 품으로 많은 이들을 안아 어루만졌으리라. 날씨가 쌀쌀한 탓에 쓸쓸함이 더하지만 형형색색 등 아래로 걸아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소담하다.
<Optional 관광지 1> 다리미 장어구이 마을
강화역사관에서 광성보를 가는 길목에 더리미 장어구이 마을이 있다. 강화도도 식후경? 잠시 들러 행복한 포만감속에 유적지 탐방을 어떨지? 장어 먹고 기운이 넘쳐 강화도를 모두 일주 할지도....
★외세 열강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국난 극복의 현장.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선사시대의 고인돌.
[중학교 교과서 국사 - 102페이지]
[강화 역사유적 탐방]
① 강화 역사관 입구(약2시간 소요,비용:1,300원) ↓ ② 옥외전시장 ↓ ③ 제1전시실, 제2전시실 ↓ ④ 제3전시실, 제4전시실 ↓(100M, 도보 5분이내) ⑤ 갑곶돈대(약 1시간 소요) ↓(4.5KM, 차량 10분이내) ⑥ 고려궁지(약 1시간 소요) ↓(6KM, 차량 15분이내) ⑦ 강화지석묘(약 1시간 소요)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돌아서면 강화역사관을 만날 수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서양보다 200년 앞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글자 하나 만드는 데 꼬박 5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린 노력을 생각하니 그에 비해 이 기념비가 초라하기만 하다.
이 비석군에는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유수, 판관, 경력, 군수 등의 영세 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 삼충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삼충사적비 등 총 67기의 비가 서 있다. 금표에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곤장 80대를 때린다고 적혀있다. 다른 비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강화역사관은 강화도에 위치한 각종 전적지와 유적을 둘러보는데 이정표 역할을 해 주는 곳이다. 강화와 인천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등 시대별로 구분해 총 4개의 전시실로 꾸며놓았다.
첫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강화의 유적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문화유적 분포 모형도를 볼 수 있다. 가 보고 싶은 곳을 클릭하면 모형도에 나타나게 된다. 앞으로 우리가 가 볼 갑곶돈대, 고려궁지, 강화지석묘를 클릭해 해 볼까? 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물들 사이에서 고인돌을 들어 올리는 선사시대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 내 친구랑 닮은 녀석도 보이네' 내 친구처럼 생긴 녀석이 어떻게 그 무거운 바윗돌을 들어 올렸을까?
첨성단 모형도를 지나 강화동종을 만난다. 고려궁터 안에 있는 성문의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이다. 노후로 종의 훼손상태가 심각해져 고려궁터에 있던것을 1995년에 여기로 옮겼다. 바로 이것이 진품이다. 마지막으로 종이 울렸을때가 언제였을지 궁금해진다. 그 동안 이곳에서 매우 갑갑했을 터, 강화동종의 몸이 근질근질할께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축성, 삼별초대몽항쟁, 병인양요 정족산성 전투,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등의 디오라마가 펼쳐진다. 몽고침입에서 삼일운동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국난극복사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전시관을 유유자적 관람할 수 있는 것도 나라를 위해 애쓴 선조들의 치열한 삶의 결과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선조들이 남긴 글 한구절, 그림 한장 등 유물 하나하나가 후세의 우리에게 큰 도전과 자극이 될 것이다.
갑곶돈대를 가는 길목에서 홍이포와 이섭정을 만날 수 있다. 홍이포는 215cm의 길이로 꽤 큰 포이다. 사정 거리가 약 700m에 달한다. 그러나 포탄 자체가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매우 약해 그 당시 서양 대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섭정은 고려 때 몽고와의 협상에서 우리측이 이롭게 되기를 염원하며 지은 팔각 정자 이다. 이 곳에 오르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맑은 날에는 북한도 보인다고 한다.
갑곶돈대의 소포.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을 지켰던 작은 포 하나, 과거의 치열했던 전투를 회상하는 듯 하다. 소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뒤쪽 구명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 화포로 사정거리는 300m이며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이다.
고려 때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강화도로 옮겼다. 이 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이다. 병자호란, 병인양요 등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훼손되고 소실되어 지금은 조선시대 건물인 승평문, 강화유수부동헌과 이방청, 강화부종각 등이 남아있다. 강화역사관에서 본 강화동종을 여기서 또 만난다. 이것은 강화동종과 모양과 크기를 똑같이 주조해 새로 만들어 놓은 신강화동종이다. 비록 모조품이지만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더욱 진짜 같다.
'외규장각 도서 약탈, 프랑스 공식 인정' 외규장각에 관한 최근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들이 이 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의궤, 지도 등을 약탈하여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연대는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관련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약탈은 인정하나 반환은 하지 못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슬픔이 절절히 다가온다. 약탈 당한 우리 문화재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고 할 만큼 고인돌의 수량면에서 세계적으로 단연 으뜸이다. 그 중에서 강화지석묘는 남한 최대의 거석이자 대표적인 묘제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다를 정도로 매우 크다. 보면 볼수록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왜 우리 선조들은 거석을 이용한 구조물로 무덤을 만들었을까? 강화지석묘의 주인은 누구였길래 거대한 무덤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옛날에 어떻게 무겁고 큰 돌을 옮겼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Optional 관광지 1> 강화 풍물시장
고려궁지에 가는 길에 강화 풍물시장에 들려보자. 흥정하는 맛이 있고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들로 가득차 있다. 입구에서부터 숭어, 밴댕이 등을 판매하는 수산물가게와 강화 특산물인 순무 등을 판매하는 야채상이 줄 지어 있다. 풍물시장엔 잡곡, 잡화, 생선, 어물, 토산품, 약초 등 없는게 없다. 2층으로 올라가면 강화에서 유명한 밴댕이회무침과 막걸리 찐빵을 맛 볼 수 있는 먹거리 장터가 들어서 있다.
첫날 일정은 사람들의 열정이 담긴 공간과 강화갯벌을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미래과학 체험공간인 옥토끼우주센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아르미애월드에서 만나는 조선 온실은 흙 아래 구들을 깔아 온도를 높이고 한지에 기름을 먹여 햇빛이 통하도록 만든 과학 영농공간이다. 둘째 날 일정은 용두레 마을에서 시작된다. 전통의 농업방법인 용두레질도 하고 용두레 노래도 배워볼 수 있는 공간이다.강화도에는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이 있다. 남쪽의 고인돌처럼 한곳에 모여 있진 않지만 정확한 모양과 크기만큼은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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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문의/안내
옥토끼우주센터 032-937-6918
아르미애월드 032-930-4114
정수사 032-937-3611
화문석전시관 고인돌공원 032-932-992
코스안내
일정
여행코스
코스안내 및 장애인 편의시설
첫 째 날
옥토끼우주센터
2007년 5월에 문을 연 옥토끼우주센터는 2천여 평의 실내전시공간과 1만6천여 평의 실외 전시공간을 갖춘 과학 체험공간이다. 전시관내에서는 휠체어로 이동에 불편없이 없고 야외공간 이동시에는 나무로 때문에 동행자가 필요하다.
점 심 식 사
아르미애월드
아르미애월드는 강화특산품인 사자발약쑥 체험공간이다. 휠체어 이용자는 약쑥 족욕과 황토볼 조욕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즐길 수 있다.
강화갯벌센터와 동막갯벌
세계 5대 갯벌중 하나인 강화갯벌은 물이 빠져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다. 주차장과 센터로 이어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휠체어 이동이 무리는 없지만 약간의 경사도가 있으니 일행이 함께 움직이며 도와주어야 한다.
정수사
강화의 호젓한 산길정취를 맛볼 수 있는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639년), 회정대사가 마니산 참성단 참배한 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저녁식사 및 숙소이동
둘 째 날
아침식사 후 이동
용두레마을
용두레질이라는 전통 농사법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마을이다. 갯벌까지 휠체어가 들어갈수 없으나 휠체어 이용자가 어린이라면 동행자의 도움을 받아 갯벌로 들어갈 수 있다.
점 심 식 사
강화평화전망대
이곳에 올라가면 굳이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한강너머 황해도 개풍군이 훤히 보인다. 전망대 전시실에는 북한의 화폐, 생활용품 등 북한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문석전시관과 고인돌공원
강화 평화전망대 아래 자리한 화문석전시관은 강화 특산품 중 하나인 화문석을 만나는 공간이다.이곳은 산지에 있어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다른 고인돌과 달리 평지에 고인돌이 있어 휠체어 이용자도 고인돌 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